신구약에서 등장하는 '성전' 그리고 '교회'


  • 2022.11.09 22:4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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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구약에서 등장하는 '성전'

1/ 구약(히-헤칼 = 큰집, הֵיכָל ) : 성전 (사무엘상 1:9, 사무엘상 3:3)

사무엘상 1:9 -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사무엘상 3:3 -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헤칼은 고대 수메르어에서 기원한 말이다. 기원전 33세기경 인류 최초로 문명시대를 시작한 수메르인들의 언어로 에(E)는 ‘집’을, 갈(GAL)은 ‘크다’를 뜻했다. 이 말을 합친 에갈(E.GAL)은 ‘큰 집’을 의미했는데, 인간이 사는 큰 집인 ‘궁전’이나 신이 사는 큰 집인 ‘신전’이란 의미였다. 수메르 문명이 저물고 그 뒤를 아카드 문명이 이었다. 아카드어로 신전을 뜻하는 ‘에칼루’(?kallu)는 ‘에갈’을 음차한 것이다. 대략 기원전 11세기경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시 에칼루를 음차하여 헤칼이라 칭했다.

히브리인의 사상에 있어서 성전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은 ‘하나님의 집’이란 뜻에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중앙 ‘성소’ 의미하기도)

 

2/ 신약(헬-히에론) - 성스러운 장소 (예루살렘 성전, 성소)

<히> '헤칼 바이트' הֵיכָל בַּיִת <헬> '히에론', '나오스'

<헬> 히에론, 나오스

히에른 : 건물성전의 외형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말

-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려 마귀에게 두 번째 시험을 당하실 때에, 그리스도 예수를 예루살렘 성의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뛰어 내려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하라고 했을 때 사용된 성전. (마4)

-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다가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었다고 바리새인들이 힐책할 때, 예수께서 다윗이 성전에서 진설병을 먹은 일과 또 자신은 성전보다 크시다 하셨을 때 사용된 단어. (마12, 12:6 히에른보다 크다)

-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안에서 매매하던 모든 사람들을 내 쫒으셨다고 했을 때. (마21)

- 제자들이 성전건물을 가리켜 그 위용을 자랑하려고 했을때 (마24)

-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셨다고 했을 때 (막12:35, 요7:14)

- 84년 동안 과부로서 금식과 간구로 하나님을 섬기던 아셀지파의 안나가 성전을 떠나지 않았다고 하는 기록에서도 역시 히에론 (눅2:37)

- 성령의 강림 이후에 믿는 사람들이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하는 곳에서도 히에른 (행2:46)

- 아시아에서 예루살렘에 왔던 많은 유대인들이 바울을 보고 심각한 분쟁을 일으킨 성전도 역시 히에른 (행21, 26:21)

- 바울이 성전의 일을 하는 자는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는다고 했을때 히에른(고전9:13)

 

나오스 :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의 처소를 가리키는 말

- 외식하는 자들에게 화를 말씀하신 곳에서,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 곳에서 성전은 나오스 (마23:16, 17, 21, 35)

- 예수님을 고소하던 거짓 증인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고 하더라"와 또 후대에 성전 된 예수의 소마를 가리킨 것이라 했을 때 모두 나오스 (마26:61, 27:40, 요2:19, 20, 21)

- 가롯 유다가 목을 매달아 자살하기 직전, 은 30을 던져 넣었던 성전도 나오스 (마27:5)

-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는 순간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고 했을 때 '성소'가 나오스 (마27:51, 막15:38), 나오스의 휘장이 찢어진 것.

- 세례요한의 아비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 직무를 따라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했다고 했을때 성소가 나오스 (눅1:9, 21, 22)

- 사도행전 7:48, 솔로몬이 하나님의 집(오이코스)을 지었으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신다고 했을 때 '곳'이 나오스

- 바울이 아덴의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증거 할 때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에서 '전' 이 나오스 (행17:24)

- 범사에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던 멸망의 아들이 자기를 보여 성전에 앉아 하나님이라 할 때에서도 역시 나오스 (살후2:4)

-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간다고 했을때 '성전'은 나오스 (엡2:21)

- 바울이 에베소에 머물때 은장색(금은세공 기술자) 데메드리오가 아데미의 은감실(사당안의 신주를 모셔두는 장, 장롱, 로마교에서는 제대위에 성체를 모셔두는 방)을 만들어 직공들로 적지 않는 벌이를 하게 했다고 했을 때 '감실'이 나오스

- 계시록에서 가장 빈번하게 나오스가 사용됨.

-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에서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의 성전에 기두잉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계3:12)에서 성전이 나오스

- 사도요한이 보았던 장래 일 중에 흰옷 입은 자들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밤낮 섬기므로 보좌에 앉으신 하니님께서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므로 저희가 다시는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도 상하지 않게 된다(계7:15) 성전은 나오스

- 사도요한으로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어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고 하신 곳에서 성전이라는 헬라어가 모두 나오스

- 그리고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聖殿)이 열리고 성전(聖殿) 안에 있던 언약궤가 보인다고 했을 때 성전이 모두 나오스이다(계11:19). 그리고 사도 요한이 본 바, 곧 천사가 성전에서 나와 머리에는 금면류관을, 손에는 이한 낫을 가지고 흰 구름위에 앉은 이에게 땅의 곡식을 거두라 외치는 장면에서, 천사가 나왔던 성전과 이한 낫을 가진 천사가 성전에서 나왔다고 했을 때도 역시 히에론이 아니라 나오스이다(계14:15, 17). 뿐만 아니라 계시록 15:5-6에서 "또 이 일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聖殿)이 열리며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聖殿)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었다"라고 했을 때 성전이 나오스이다(8). 그리고 사도 요한이 계시록 16:1, 17에서 성전에서 큰 음성이 들렸다고 했을 때도 역시 나오스이다. 그리고 사도요한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안에서 성전(聖殿)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전능하신 이와 그의 어린 양이 그 성전(聖殿)이라 했을 때 성전이 나오스이다(계21:22). 이제까지 살핀 곳에서 우리가 일차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계시록에서 히에론이라는 말이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다 나오스라는 헬라어만 사용될 뿐 히에론이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계시록 해석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역시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대부분 히에론 개념이 쓰이고 있는데 반해 서신서 이하의 내용에서는 히에론이라는 개념이 고전9:13에서 단 한번 언급되었을 뿐, 대부분의 서신서 이하의 내용에서 모두 나오스라는 헬라어가 사용되고 있다.

 

성도들의 몸이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하였을 때 히에론이 아니고. 나오스.

 

이에 대해 아마도 깨닫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이곳에서 장사도하고, 할례를 받기도 하고, 다윗이 진설병을 먹기도하고, 성령 강림 이후에 믿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도하고, 또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가르치던 곳이기도 하며, 사람들이 이곳에서 기도를 했던곳 : 히에론

사람들이 이로 맹세를 하기도 하며, 그리스도 예수를 고발하던 자들이 위증할 때,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짓는다고 표현, 가룟유다가 자살하기 직전 자기 스승의 몸값으로 받았던 은화 30을 던져 넣기도 한곳, 그리스도의 죽음 직전에 찢어졌던 휘장, 사라갸가 분향했던 분향단이 있던곳, 계시록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관련된 곳 : 나오스

바울은 '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 (엡2:19-22)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이 영광스런 자리에 우리가 참여될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하나님의 나오스가 되었기 때문이다.

 

2. 신구약에서 등장하는 '교회'

1/ 구약 (히-카할(칼-부르다) : 모으다, 회중의 모임 (출35:1)

그러면 ‘교회’라는 말의 의미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교회’라는 말이 직접 쓰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교회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단어를 찾을 수는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히브리어 ‘카할’과 ‘에다’가 그것입니다. 카할은 ‘의논하기 위해서 소집된 공동체’라는 뜻으로 ‘회중’을 뜻하였습니다. 그리고 ‘에다’는 ‘택함을 받아 모인 집단’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으나, 구약성경을 최초로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 에서는 카할이라는 히브리어를 ‘에클레시아’ 라는 헬라어로 번역했고,  ‘에다’ 라는 히브리어는 ‘시나고게’라는 헬라어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래서 신구약 성경에서 ‘교회’라는 말에는 카할과 에클레시아를 사용해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부르셔서 모인 공동체’ 라는 뜻으로 굳어졌고, 에다와 시나고게는 ‘유대인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모이는 회당’으로 의미가 제한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교회는 에클레시아로, 유대인의 회당은 시나고게로 구별해서 부르게 되었다. 이것은 유대교와 기독교가 구별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특별한 목적을 위해 한 곳에 모인 많은 사람의 무리를 말한다(레 8:3; 민 3:7; 14:36; 15:33; 수 9:19; 시 89:7).
구약에서는 히브리어로 ‘회막에 붙여야 할 자’란 뜻의 ‘에다’(‘edah)와 ‘함께 부르심을 받은 자’란 뜻의 ‘카할’(qahal)이 쓰였으며(출 12:6, 19; 레 4:13) 하나님과 관계되어 구별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켰다(출 12:19; 16:2; 민 16:3; 20:22).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무리(행 19:32, 41)인 교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교회로 번역된 헬라어 ‘에클레시아’는 70인역 성경이 히브리어 ‘카할’ (qahal)을 옮긴 것이다. 히브리어 ‘카할’(qahal)은 개역성경에서 ‘집회’(창 49:6; 시 26:5)나 ‘총회’(민 19:20; 20:12; 신 9:10; 삿 20:2; 기타)로도 번역되었다. → 교회, 총회를 참고하라.

 

2/ 신약 (헬-에클레시아) : 교회 (에크: 부르다, 클레토스: 나오다)

에클레시아라는 헬라어는 본래 일반적인 모임을 뜻했습니다. 이 말은 기독교가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공동체라는 뜻으로 사용하면서 기독교의 전문용어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뜻하는 영어의 church, 독일어 Kirche, 스웨덴어 kyrka등은 헬라어 kyrike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 말은 ‘주님께 속한 공동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라는 말로서 신약성경에 사용된 헬라어 단어 ‘에클레시아(ekklesia)’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kyrike를 사용한 것은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교회 에클레시아라는 말을 싫어하고 키리케라는 말을 즐겨 썼기 때문입니다.  그 영향을 많이 받은 독일 교회와 유럽의 교회들이 ‘주님께 속한 공동체’라는 뜻으로 church(영어), Kirche(독일어), kyrka(스웨덴어)를 사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로마를 중심한 나라들은 헬라어 에클레시아(ekklesia)를 따라서 라틴어 ecclesia, 스페인어 iglesia, 불어 eglise, 이태리어 chiesa 등의 말로 교회를 표시했습니다.

 

에클레시아 - 예수님과 바울이 사용하던 단어

교회는 의미는 다른 단어로 에클레시아가 있습니다.

에클레시아는 카할이 지닌 회중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처음 예수님께서 언급하셨던 단어이고 바울이 언급한 단어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속에 에클레시아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내가 또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 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 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6:18

And I say also unto thee, that thou art Peter, and upon this rock I will build My church; and the gates of hell shall not prevail against it. 

κἀγὼ δέ σοι λέγω, ὅτι σὺ εἶ Πέτρος, καὶ ἐπὶ ταύτῃ τῇ πέτρᾳ οἰκοδομήσω μου τὴν ἐκκλησίαν, καὶ πύλαι ᾅδου οὐ κατισχύσουσιν αὐτῆς.

 

그런데 에클레시아는 본래 교회라는 구체적 건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시민들의 집회와 같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예를들어 에베소의 아데미 신전에 모였던 무리들은 에클레시아로 언급되었습니다.  그런데 에클레시아는 성경에서 사용될때 단지 시민들의 집회 정도로 번역되지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해서 불려진 사람들로 사용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말씀예로 사도행전 7장 38절 말씀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회중으로 모여 있을 때에, 시내 산에서 그에게 말하는 천사와 우리 조상들 사이에 중개자가 되어서, 산 말씀을 받아서 우리에게 전해 준 사람입니다. 행7:38

결론적으로 church 유례는 헬라어 퀴리아코스이지만 실재 성경에 사용된 대부분의 말은 에클레시아와 코이노니아 인 것입니다.

정리해보자면 교회는 건물이나 제도 아래 규정된 형태가 아니며 우리로 말미 암지 않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특별히 불려진 사람들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귐을 가진 사람들이며, 주님께 속한 사람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하는 것 입니다.

 

3/ 이러한 자들을 (헬-퀴리아코스) : '주님께 속한 자'라 부른다.

영어 church는 주님에게 속한다는 뜻을 지닌 헬라어 퀴리아코스에서 유례되었습니다. 이 말은 종교개혁 당시 불법을 저지르던 카톨릭교회의 상황과 구분하기 위해 선택한 단어입니다. 처음 의미는 주님의 사람들의 의미였습니다. 결국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에서는 이 단어가 채택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카할과 대비되는 말로 카할은 세속적인 의미와 종교적인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었습니다.

 

두 세사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마다 교회가 조직되는 것.

 

 

참고자료


[ 성전 ]

일반적으로 신성이 거주하는 장소로 생각하는 건을 고대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성전의 기본 설계도는 끝과 끝이 이어진 두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큰 방의 끝에 단 하나의 입구가 만들어져 있다. 예배하는 자는 입구를 통과하여 큰 방을 지나 내부 성소인 작은방에 다다르게 된다. 입구 바깥에 딸려있는 현판과 뜰에서는 희생 동물을 죽여 불로 태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초기 예배의 기초가 된다. 곧 광야의 성막, 솔로몬의 성전, 제2의(느헤미야) 성전, 헤롯의 성전이다.I. 솔로몬 이전의 성전이스라엘의 첫 성전은 광야에서 손쉽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성막이었다(출 25-31장, 33-4장).
그래서 하나님은 백성들 사이에서 거주하실 수 있었다(출 25:8-성막).
가나안에 들어간후, 이스라엘은 여러 장소에서 산당이나 성소를 세웠다. 이런 장소들 중에서 몇 군데에는 성막이나 법궤가 안치되어 있었다(예. 실로, 수 18:1, 벧엘, 삿 20:26-27 ,기럇여아림, 삼상7:1-2, 기브온, 대상 16:39, 21:29, 대하 1:3).
어떤 곳은 의미있는 사건의 장소가 되었다(길갈, 수 4:19-24 ,5:13-15, 실로, 수 22:12, 세겜, 수24장[참조.26절],미스바, 삿 20장, 삼상7:5-12).
어떤 곳은 고대의 산당이기도 하였다(세겜, 창 12:6-7, 33:18-20. 벧엘, 창 13:3-4, 31:13).
실로에는 성전이 세워졌으며(삿 18:31, 삼상 3:3) 매년 순례의 절기가 거행되었다(삿 21:19).
실로가 파괴 된 후, 실로의 제사장들은 성막의 몇몇 기구들이 안치되어 있는 놉의 산당에서 명맥을 유지하였다(삼상21-22장, 참조. 14:3).
II. 솔로몬의 성전다윗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와서 장막 안에 두었다(삼하 6장).
그는 예루살렘 안에 성전을 건립할 계획을 세웠으나 하나님에 의해 좌절되었다 (삼하 7:5-16,대상 22:8).
그러나, 아마도 초기 이스라엘의 신성한 장소인 오르난타작마당이란 장소는 확보된 셈이었으며, 성전 건립을 위한 계획이 마련되었다(대상 22장).
솔로몬은 재위 4년 때에( B.C. 약 958년) 성전을 세우기 시작하였고 7년 후에 완성하였다. 성전 건축은 베니게 장인들이 감독하였다(왕상 7:13-14, 40-45).
그리고 베니게 제품들이 사용 되었고(왕상 5:6, 8-10)성전은 베니게 스타일을 띠게 되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설명과 다른 고대 근동의 성전을 유추하여 성전의 모형을 설립하는 일은 전적으로 정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묘사하는 것은 완전하지도 않으며 어떤 곳은 서로 어긋난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솔로몬 성전의 대체적인 큰 윤곽은 살펴볼 수 있다. 성전은 '바다'와 희생 제단이 서있는 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본래의 성전은 직사각형이며,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각의 넓이는 20규빗(8.9m)이었다. 첫 번째 부분 바로 앞에는 낭실이 있는데, 두개의 놋기둥이 놓여 있었다. 낭실은 10규빗이 었다(4.5m).
두 번째 부분은 '성소'로서, 제사장의 활동이 여기서 거의 이루어진다. '성소'는 40규빗(18m)으로서 그 안에 향단과 10개의 금촛대와 진설병 상이 있었다. '지성소'인 내소는 20규빗(8.9m )인데, 두 개의 큰 그룹이 법궤 위에 안치되어 있다. 이 방은 오직 대제사장만 속죄 일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성전은 큰 벽돌로 건축되었을지라도, 내부 치장은 장식 판자와 목제로 덮여 있어서 석제는 보이지 않았다. 중앙의 방과 내소에 있는 품목들은 금박으로 입혔다. 골방은 3층으로 되어 있는데, 본래의 성전의 후면과 측면 둘레에 세워졌다. 이 방들은 아마도 직무 중인 제사장들의 숙박지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물품과 성전의 보물, 조공물, 심지어는 무기를 보관하는데 사용되었을 것이다(왕상 7:51, 14:25-26, 15:18, 왕하11:10, 12:4).
'이스라엘의 온 회중'(왕상 8:14, 참조. 1절)이 참여한 솔로몬의 대 봉헌 의식은 새 성전이 이스라엘 종교의 모든 국면을 통합하는데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성전 건축은 이스라엘의 다윗 왕국이 설립된 후 한 세대만에 이루어졌다. 고대 세계에서 성전 건립은 신의 현존에 대한 가시적인 상징은 물론 성전 건립자를 승인해 주는 상징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현 지도체제는 정당화되는 것이다. 또한 추종하는 백성들에 대한 왕의 권위가 합법화되었음을 증명해 준다. 솔로몬 시대 이후, 성전 안에서 모종의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것은 외부 세력에게 노략을 당하거나 조공에 필요한 자금 때문에 유다의 왕들이 들이닥친 경우였다. 어떤 왕들은 교묘하게 성전 기구들을 변경하기도 하였다(특히 아하스 왕, 왕하 16:7-18).
예루살렘이 B.C.587/586년에 멸망하였을 때 느부갓네살은 성전에 남아있는 물품들을 옮기고서 성전을 태워버렸다. 그렇지만 성전이 파괴된 후에도 순례자들은 성전이 있던 장소로 여전히 순례를 했었다(렘 41:5).
III. 에스겔의 환상솔로몬 성전이 파괴된 후 에스겔 선지자는 회복된 성전과 성전의 내부 장식에 대한 환상을 보았다(겔 40-44장).
일련의 환상은 이스라엘 땅에 회복된 공동체에 관한 것이다(겔 33-38장).
어떤 학자들은 에스겔이 제2성전에 대한 건축상의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선지자가 받은 정보로는 건축하기에 충분하지가 않았다. 그 대신 이 장들은 거룩함으로 회복되고 자기들의 땅 안에 재설립되는 백성들 가운데서 하나님이 거주하실 것이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바라보는 포로들을 위한 소망의 진술로 이해해야 할것이다. 이 소망은 최근의 예루살렘 멸망 사건과 균형을 이룬다. 반면에 성전으로 하나님의 영광 (곧, 하나님의 임재)이 돌아오는 것을 에스겔이 본 것은 초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가는 것을 본 환상과 대조가 된다(10-11장).
에스겔 성전 기획의 기초가 되는 착상은 솔로몬 성전이었다. 그러나 차이점은 많이 있다. IV. 제2의 성전바벨론 포로생활 후 성전을 재건하려는 노력이 B.C. 약 537년에 시작되었으나,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와 스룹 바벨지도자가 이 일을 완수하도록 자극을 하기 전까지는 지체되었었다(B.C.520년, 스 5:1-2, 6:14).
이 성전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이 성전도 솔로몬성전과 같은 장소에. 같은 설계로, 같은 양식대로 세워졌지만, 성전 기구들은 전에 것보다 못하였다(스 3:12, 학 2:3).
그렇지만 느부갓네살이 가져간 보물 중에서 약간은 되돌려 받았다. 성전으로 대표되는 권위는 이제 더 이상 왕의 것이 될 수 없었고 전적으로 제사장의 몫으로 되었다. 이후로부터 성전은 팔레스타인에 있는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흩어진 유대인들을 위한 이스라엘의 종교적 심장부로 상징화되었다. B.C. 167년에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가 희생 제한 위에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 (단 11:31)을 세웠다. 3년에 걸친 전쟁이 끝난 후, 마카비 일가는 성전을 다시 정결하게 하였고, 성전 예배를 다시 세웠으며, 건축을 상당히 강화하였다. 약 100년 후 로마의 정복자 폼페이는 불경건하게 성전 안으로 들어갔으나 신성을 존중하여 약탈하지는 않다. V. 헤롯의 성전B.C. 20-19년에 헤롯 대왕은 헬레니즘-로마 양식으로 성전을 세우기 위하여 성전을 분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10년만에 기초 골격을 완성했지만 성전 공사는 A.D. 64년에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파괴 되었다(참조. 요2:20).
성전이 재건축되는 동안에 희생은 끊이지 않고 지속되었다. 건축을 입안한 자는 헤롯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 자는 특별히 정치적 동기를 지니고 있었다. 유대인들을 통치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는 가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두메 인으로서, 헤롯은 많은 유대인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다. 성전을 건설하는 1차적인 이유는 백성들의 비위를 맞추어서 정치적인 긴장을 완화 시키려는 데 있었다. 헤롯의 성전은 큰 언덕 위에 세워졌는데, 성전산(Temple Mount)이라는 이곳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졌으며 탁월한 헤롯 풍의 석공술로 만든 높은 옹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참조. 막 13:1).
이 언덕의 정확한 규모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지금의 하람 에쉬-솨리프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어떤 학자들은 이 언덕의 모양이 거의 정사각형일 것이며 하람 남쪽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넓이와 거의 일치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성전 주위는 열주로 울타리가 쳐져 있는데, 동쪽 방면에는 열주들을 통과하는 문이 있는 솔로몬의 행각이 있다(행 3:11, 5:12).
그런데 훌다 문은 왕실의(남쪽) 행각 밑으로 굴을 파서 만든 문이다. 안토니오 요새는 북서부쪽의 모퉁이에 위치해 있어서 성전과 연결되어 있다. 성전산의 대부분은 이 방인들이 들어갈 수 있는 이방인의 뜰로 되어 있다. 여자의 뜰은 유대 여자들을 위해, 이스라엘인의 뜰은 유대 남자들을 위해 구획되어겼다. 제사장의 뜰은 본래의 성전에 근접해 있는 지역이었다. 이 뜰 앞에는 번제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본래의 성전은 길이와 높이가 100규빗(44.5m )이나 되며, 큰 흰돌로 만들어져 있으며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포로기후 시대부터 로마시대까지 유대주의 내의 두 가지 경향은 어떤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의 중요성을 경감시켜 주었다. 첫 번째 경향은 디아스포라의 성장이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예루살램에 있는 교회에 충성을 다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드리는 성전건물과 특히 엘레판틴 교회(B.C. 6-5세기)와 레온토폴리스 교회(B.C 약 164년 오니아스 4세에 의해 세워졌으며 A.D. 73년 로마에 의해 파괴당하기 전까지 유지되었다)의 전조가 된 것은 아니었다. 이 성전들이 대다수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감정을 대표하지는 많았지만, 디아스포라(와 팔레스타인)에 있는 회당들은 유대적인 예배를 위한 새로운 초점을 제공해 주었는데, 이 예배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어도 지속할 수 있었으며 성전이 없어도 유대주의의 기초가 될 수 있었다. 두 번째 경향은 헬레니즘 시대와 초기 로마 시대의 분파주의의 흥기였다. 적어도 유대 종파와는 다른 방식을 갖고 있는 쿰란의 주요 관심사는 예루살렘에서 의 예배보다는 종파였다. 콤란 사람들은 성전 그 자체를 거부할 필요성은 없었으나, 성전을 장악한 제사장들과 부패된 그들의 의식을 합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였다.IV. 신약의 성전성전은 예수를 포함한 유대인들에게 강한 느낌을 유발시킨다. 예수님은 성전을 하나님이 그 분의 백성 이스라엘 안에 거주하시는 장소로(마 23:21, 요 2:16) 보았으며, 성전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거룩하게 한다(마 23:17-21)고 보았다. 성전 뜰을 정결케 하신 예수님의 의도는 뜰이 본래의 기능을 회복하도록 하는데 있었다(막 11:15-17).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있다고 주장하셨으며(마 12:6) 또한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셨다(막 13:2).
초대교회는 한때 성전에서 정기적인 예배를 드렸다(행 2:46, 참조. 눅 24:53).
이곳은 사도들의 사역의 핵심지였다(행 3장, 5:12, 20, 42).
바울 역시 성전 의식에 참여했다(행 21:26, 22:17).
그러나 교회 내의 헬라파들은 변화를 시도하였다. 곧 하나님은 인간의 손으로 만든 집에 거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행 7:444-50, 참조 행 17:24).
바울 서신에서 '성전'이란 단어는 더이상 물리적인 건물을 가리키지 않고(물론 예루살렘에는 여전히 성전이 서 있었다), 기독교 신자들의 공동체로 언급하고 있다(고전 3:16-17, 엡 2:19-22).
고후 6:16-7:1에서는 이 개념이 특이한 구약의 예언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깨끗함에 대한 강조는 새 성전을 본 에스겔의 환상과 일치하고 있다(참조. 겔 43:7-12, 고전 6:19).
요한 계시록은 하늘의 성전에 대해 말한다(계 7:15, 11:19, 14-16장, 참조. 시 11:14).
이 성전은 히브리서의 하늘에 있는 장막을 유추한 것이다(히 8-9장).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새 예루살렘에 세워지는 성전 건물을 상상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 자신과 어린양이 그 성읍의 성전이 되실 것이며(계 21:22),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 사이에 거하실 것이다(계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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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계속해서 '거룩해져야 하는 사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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